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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글에서는 이탈리아의 근대 건축 흐름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탈리아는 다른 유럽 국가와는 다르게 사회주의, 전체주의 영향이 강했던 국가입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이 근대 건축의 흐름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데, 이번 글에서는 이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탈리아의 근대 건축 흐름

    이탈리아에는 1923년에 이미 독재적 사회국가주의인 파시즘(Fascim)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1930년대 파시즘과 결합된 건축물이 몇 개가 세워졌고 근대건축도 이와 병행하여 진행되었습니다. 1926년에는 'Gruppo 7'이라는 7명으로 구성된 건축 집단이 결성되었습니다. 그들은 미래파의 이상향(utopia)적 접근 방법과는 달리 현실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이탈리아의 특성을 고려한 기능적인 건축을 추진하려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쥬세페 테라니(Giuseppe Terragni, 1904~1943)가 코모(Como)에 건설한 파시스트의 집(현재 민중의 집으로 개칭, 1932-36)에서 볼 수가 있는 것처럼 입면체의 조형성을 추구하면서 이탈리아적인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했습니다. 이에 반하여, 구조 디자이너 피에르 루이지 네르비(Pier Luigi Nervi,1891~1979)는 피렌체의 경기장(1930~1932)을 건설했을 때 관람석의 지붕 구조에서 새로운 형태의 길을 개척하였습니다. 그는 그 이후 거대한 공간을 덮는 트러스 기술을 격납고와 같은 건축물에 적용해 나갔습니다. 오르비에토(Orvieto)의 비행기 격납고(1935)가 그 사례입니다. 이러한 기술적 구조물을 제외하면, 이탈리아 건축은 서서히 유사 고전주의의 흐름을 향하여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1942년 로마 만국 박람회에서의 여러 건축물들이 그 사실을 단적으로 나타내었습니다.

     

    합리주의(Rationalism) 건축의 전개

    이탈리아에서는 1926년에 아달베르토 리베라(Adalberto Libera), 루이지 피지니(Luigi Figini), 지노 폴리니(Gino Pollini) 그리고 쥬세페 테라니(Giuseppe Terragui) 등에 의해서 '합리주의 건축을 목표로 하는 이탈리아 운동(MIAR)'이 조직되었습니다. 이 MIAR에 의해 그들은 국제적인 운동에 참가하고자 하였습니다. 같은 해 7인의 합리주의 건축가(쥬세페 테라니, 루이지 피지니, 아달베르토 리베라, 지노 폴리니, 세바스티아노 라르코, 구이테 프레토, 카를로 엔리코 라바) 그룹이 탄생했는데, 이 그룹은 건축은 기능의 합리적 분석에 기초하여 설계를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927~1928년에 쥬세페 테라니는 코모(COMO)에 집합주택 '노보콤(Novocomm)'을 지었지만 이 건물의 원과 구 형태를 겹친 모서리 부분의 디자인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1932~1936년에 그는 같은 코모에 '카사 델 파쇼(파시스트당 코모 본부)를 세웠습니다. 유리로 된 탑 라이트가 설치된 중정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 건축물은 순수한 형태, 아름다운 비례감, 그리고 백색의 대리석 마감에 의해 주위에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었습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형태로 디자인된 네 면 각각의 파사드에서 빛과 그림자, 매스와 보이드된 부분이 극적인 대비를 만들어내었습니다. 1933~1936년에는 피렌체(Florence)에 산타 마리아 노벨라(Santa Maria Novella)가 세워졌습니다. 이 설계에 참가한 건축가는 죠바니 미켈루지(Giovanni Michelucci), 넬로 바로니(Nello Baroni), 피에르 니콜로 베라트리(Pier Nicole Berardi), 이탈로 감베르니(Italo Gamberini), 사례 과르니에르(Sarre Guarnieri), 그리고 레오나르도 루산나(Leonardo Lusanna) 등이 있습니다. 평평하며 직사각형 형태인 이 건축물은 깊은 처마와 비대칭으로 구성된 '글라스카스카데(Glaskaskade, 유리로 만든 인공의 작은 폭포)가 이목을 끌었습니다. 1937~1938년에 장 루이지 반피(Gian Luigi Banfi), 로도비코 마르 비아노 디 벨죠요소(Lodovico Barbiano di Belgiojoso), 엔리코 페레수티(Enrico Peressuti), 에르네소토 나탄 로저스(Ernesto Nathan Rogers)으로 구성된 네 명의 건축가 그룹은 레냐노(Legnano)에 이탈리아 합리주의를 상징하는 요양소를 건설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탈리아의 합리주의 건축

    18세기 중반 서양 역사상 마지막 통일된 예술 양식인 바로크가 막을 내린 이후 건축에 있어서는 다양한 경향들이 시도되었습니다. 이런 시도는 20세기 초에 이르러 하나의 통일된 흐름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건축 사조에 있어서는 바로 이 시점을 근대 건축의 시작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당시 유럽의 선진국들이 주도하였습니다. 이런 변화에 상대적으로 뒤떨어져 있던 이탈리아는 1920년대에 무쏠리니의 등장과 함께 활기를 띄게 되었습니다. 특히 밀라노(Milano), 코모(Como), 토리노(Torono) 등의 지역을 중심으로 합리주의(Rationalism) 건축이라는 이탈리아 특유의 성향을 가진 젊은 건축가들이 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능주의 시대의 기계 미학과 이탈리아 고전주의 사이에서 양자의 균형을 통하여 자신들의 독특한 건축을 특성화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이것은 르 꼬르뷔지에, 미스 반 데로에, 발터 그로피우스 등 동시대의 거장들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새로운 차원의 이탈리아 건축을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이탈리아의 근대 건축은 자유(Liberty), 미래주의(Futurism)등의 시기를 거치면서 발생한 측면에서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구별되는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들이 무쏠리니의 전체주의 정권에 의해서 통합됨으로써 그 과정에서 합리주의라는 독특한 양상으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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