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반응형

    이번 글에서는 스페인 건축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로록 하겠습니다. 스페인 지역에 있었던 초기 서고트 건축에서부터 중세 건축을 거쳐, 가우디의 건축, 근대 건축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이번 글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스페인 건축 역사, 서고트 건축

    서고트의 건축은 매우 수수하고, 장식이 적은 것이 특징입니다. 건축 양식은 말발굽형 아치가 특징입니다. 그들의 건축물은 반원 또는 말발굽형 문에 벽면은 벽돌과 마제 석기로 보강하고, 지붕의 형태는 물고기뼈와 같은 모양을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들의 건축술은 후에 이슬람 건축 양식에도 가미되었습니다. 아스투리아스의 정복 지역 중심지에서 특유한 건축 양식이 발전되어 9세기 중엽에 성수기를 이루었습니다. 9-10세기 칸타브리아의 고산 지역으로 피신한 기독교인들이 지은 아스투리아스 건축은 서고트와 샤를 제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써 비교적 빈약한 재료인 벽돌이나 사각석으로 쌓은 벽과 새로운 기술의 아치로 받쳐진 이중벽이 특징입니다. 코린트 식을 본뜬 투박한 기둥머리, 외부 받침대가 있는 긴 반원형의 복도식 천장, 굵은 밧줄을 묘사한 소용돌이 문양, 반원형 아치 등의 특징은 서고트의 말 편자형 아치를 대체하였습니다. 스페인의 로마네스크 건축은 서유럽의 기독교적 예술 형식으로 11세기에서 13세기까지 성행하였습니다. 스페인의 로마네스크 근본인 건축은 원형 천장의 조직적인 사용으로 좁은 공간과 강한 버팀목이 있는 튼튼한 벽을 세운 것이 특징입니다. 11세기 초반 카탈루니아 학파는 장식이 전혀 없고 검소하며, 수직 띠에 작은 아치들과 종탑 등 롬바드리다의 영향을 받은 초기 건물들을 선보였습니다. 대표적인 건물로는 성 베드로 데 로다 교회(1022)와 리폴의 수도원(1032)등이 있습니다. 초기 로마네스크의 예술의 절정은 하카 대성당(1054)으로 산티아고 순례자들의 예술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의 기본 요소는 관통 아치, 부벽 설치, 반원 교차부를 일단 높게 유지하여 장엄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스페인 건축 역사

    12~15세기 건축

    12세기 후반 로마네스크와 고딕 사이에 수수한 장식 형태인 시스테르 양식이 수도사에 의해 소개되었고, 이는 둥근 원형과 끝이 뾰족한 형태의 탑을 제거하면서 기둥과 석주의 장식을 줄였습니다. 이베리아 반도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을 대체하여 프랑스로부터 새로운 고딕 양식이 들어왔습니다. 로마네스크 건축은 빛에 관한 공간과 암영이 지배했으나, 고딕 건축은 벽의 두께를 줄이고 넓은 창문에 색유리를 끼워 밝고 장엄함을 나타내었습니다. 스페인 고딕 양식은 날씬한 탑이 특징입니다. 스페인의 고딕식 건축은 시토회 수도원 회랑의 건축에서 시작되었으며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유사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 양식의 혁명적인 발전은 세 가지 기본적 요소의 조화에 있습니다. 즉 교차된 지추의 천장, 중간 부분의 삐죽하게 솟은 아치, 외우의 토대벽 등입니다. 네모난 기둥, 라틴 십자가형 도면, 반원형 상단 제단, 원형 도면의 상단 부분, 채색된 유리 창문, 박공식의 조형이 된 정문 등도 고딕식 건축의 주요 특성에 해당합니다. 13세기에 번성한 이 형식으로 레온, 부르고스, 톨레도의 대성당들이 지어졌으며, 특히 레온 대성당은 프랑스 중부 고딕식의 영향을 받았고, 그 유리 창문과 포함된 조각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부르고스 대성당은 페르난도 3세의 주도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특히 외부의 이중 아치는 기둥벽의 역할을 하는 독특한 체제이며, 15세기에 지어진 끝부분이 바늘같이 뾰족한 탑드로가 정문의 풍부한 장식으로 중요한 명성을 지닌 건축물입니다. 가장 스페인 적인 건축은 톨레도 대성당이다. 그 중심 홀은 기독교 교회들 중에서 가장 넓은 것이며, 상단의 제단 부분에 위치한 장식은 능숙한 고딕식입니다.

     

    16~17세기 건축

    16세기는 스페인에서 이탈리아의 영향으로 르네상스 건축의 절정기였습니다. 1560년에 이르기까지 르네상스는 스페인에서 '은세공 예술'로 알려졌습니다. 이는 건물 정면의 장식이 특징인데, 그 세밀함으로 은 세공가의 적업을 연상시킵니다. 건축구조는 계속 고딕식이고, 건물의 정면 장식은 르네상스식이었습니다. 장식 테마는 반신상이 있는 메달과 가문의 문장, 인간, 동물, 환상적인 디자인을 구성하는 식물 줄기, 그리고 난간 모양의 기둥 등이 있습니다. 세기말 소위 에레라 양식으로 새로운 왕궁을 건설했습니다. 이는 세공사들의 장식 낭비에 반대하여 전파한 특유의 건축 양식입니다. 또 다른 특징은 내부의 엄숙한 분위기, 현관과 출입구 공간의 장식 및 벽의 윗부분에 장식으로 두른 돌출부 등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축은 로마의 바로크식에서 유래하였으며 따라서 풍부하고 화려한 장식을 중요시하였습니다. 이 양식은 흔히 벽돌을 사용하는 점, 장식된 표면이 절대적인 점, 비싼 재료와 물질에 대한 취향, 흰 칠을 한 큰 벽면과 돌로 테두리를 장식한 점 등으로 무데하르 혹은 플라테레스코식의 재현을 의미하였습니다. 가장 많이 이용된 식물 문양은 르네상스 식이었고, 특별한 경우에만 이탈리아 바로크식의 전형적인 곡선 식물 문양을 이용하였습니다. 바로크 건축 양식의 특징은 바로 외부의 벽은 장식이 없는 대신 정면 문은 성단처럼 장식되어 환상적이고 동적인 느낌을 주는 데 있습니다. 바로크 건축의 화려한 장식 경향은 18세기에 들어와 점차 사라져 갔으며, 이는 부르봉 왕가의 즉위와 함께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 예술의 영향이 농후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18~19세기 건축

    18세기의 전반 50년 사이에는 바로크의 영향이 계속되었습니다. 어느 의미에서 18세기의 스페인 건축은 예술적 기반보다는 경제, 사회적인 상황의 반영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공공건물은 임대료나 11조로 조성된 자금으로 건축된 것이 특징입니다. 따라서, 초기의 경향은 민족적 바로크 풍의 최종 단계를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신고전주의 건축은 외국의 건축가들과 산 페르난도 아카데미에서 로마 및 그리스의 고대 예술에 관심이 고조되어 새로운 건축 양식을 추구 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19세기 초의 스페인 건축은 신고전주의의 추종 및 쇠퇴 현상을 보였습니다. 19세기말인 1888년에 바르셀로나 국제 박람회와 카탈루냐 경제의 성장으로 안토니오 가우디가 창조 및 기술적인 면에서 근대 건축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성가족 성당은 고딕 양식에 포물선 아치, 식물과 형상적인 장식으로 유명합니다. 19세기말 카탈루니아에는 번영하는 산업의 토대를 지닌 박식하고 교양 있는 국수주의적 중산층이 존재하였으며, 이들이 모더니즘의 탄생을 지지하였습니다. 경제적인 활동 능력과 카탈루니아 문화의 재등장과 발전을 추구하는 경향은 중산층이 새로운 예술 형식을 받아들이게 하였습니다. 이런 대사업가 중의 하나인 에우세비오 델 구엘 백작을 위하여 가우디는 구엘 궁전(1885-1889)과 구엘 공원(1900-1914)을 건축하였습니다. 카탈루니아의 모더니즘은 새로운 예술의 가장 독창적인 표현이며, 전유럽에 전파되었습니다. 부정확함 혹은 신바로크식이나, 고딕식에 영향을 받은 평범한 장식주의, 그리스 예술의 계승적 요소인 기하학적 표현, 곡선의 사용 등이 모더니즘 건축의 특징이며, 대표적인 인물이 가우디였습니다.

     

    20세기 이후 건축

    안토니오 가우디는 중세주의에서 자연주의적 사실주의로 건너가는 단계로서 교량 역할의 바로크식을 선택할 줄 알았습니다.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의 작품으로 스페인에서의 모더니즘의 진정한 탄생을 언급할 수 있었으며, 특히 가우디의 독특한 요소인 번쩍이는 색채와 간접적인 빛의 사용은 어는 다른 예술 형식의 경향과 결부시킬 수 없는 몇 가지의 제안을 창조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또 다른 특징은 자연주의를 겸한 종교성을 볼 수 있습니다. 가우디는 전통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모더니즘 조류를 바르셀로나에 소개하였습니다. 20세기의 첫 30여 년간 '은의 시대'라고 알려진 대저택들은 프랑스식 혹은 바로크식으로 지어졌으며 모더니즘 장식을 포함하였습니다. 스위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르와 미국 건축가인 라이트에 의해 새로운 합리주의적 혹은 기능주의적 조류는 가우디의 깊은 영향을 받은 스페인에 침투하였습니다. 철, 유리, 콘크리트 등 새로운 자재의 사용은 기능성의 추구와 함께 이 형식의 가장 독특한 요소입니다. 스페인 내란 후 비중 있는 예술가의 부족, 자재의 부족과 처절한 경제 여건으로, 또한 전후의 파괴된 도시 여건 등으로 건축의 경향은 정면이 장식되고 거대한 모습을 지닌 신에레리아노 형식의 웅장한 건물 형식이었습니다. 19세기와 20세기 초, 특히 철과 시멘트 사용의 변혁 속에서 호세 루이스 세르트의 합리주의, 세쿤디노 수아소의 기능주의, 루이스 구티에레스의 전통주의 등 혼합적인 경향이 현대 스페인의 건축 경향입니다. 그 이후에는 국제적 양상으로 페드로 마시에우, 사엔스 데 오이사 등이 명성을 떨쳤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