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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글에서는 근대건축의 대가로 불리는 "미스 반 데 로에"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미스의 생애와 건축작품, 건축 철학 등에 대해서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근대 건축가 미스 반 데 로에의 생애

    근대 건축가 미스 반 데 로에(Mies van der Rohe)는 1886년 독일에서 출생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벽돌공이자, 석공이었기에 그런 이유로 어려서부터 자연히 건축 조형에 대한 이해와 연습, 자질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독일 아헨(Aachen)으로 이사한 이후, 그곳에서 스터코(stucco)로 건축장식을 디자인하는 것을 배우면서 건축 제도법을 수학했습니다. 1905년엔 베를린에서 목재가구를 전문적으로 디자인하는 건축가 밑에서 일했으며 여기서 배운 것들이 「바르셀로나 의자」로 불리는 그의 가구 디자인으로 후대에 잘 알려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스는 신고전주의, 표현주의, 데스틸(De stjl-네덜란드) 운동 같은 그 당시 유행하던 예술 운동을 열심히 수학했으며 이러한 이념들을 바탕으로 그는 국제주의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1930년에 미스는 그로피우스의 추천으로 바우하우스의 교장이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예술적, 건축적인 개념들을 명확히 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1937년 나치에 의해 독일에서 추방되었고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시카고 일리노이 공과대학(IIT)의 건축학장이 되어 IIT의 새 캠퍼스를 설계하였습니다. 그곳에서도 미스는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전념을 다했는데요. 그는 "가르친다는 것은 스스로의 건축 사상을 명료히 하는 기회"라고 말하며 교육을 중요시했고, "건축을 배우기 위해서는 자신의 건축에 대한 사고방식을 명쾌히 해야 한다."며 건축 교육과 명쾌함을 강조했습니다.

    근대 건축가 미스 반 데 로에의 생애, 건축 철학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전경

    미스 반 데 로에의 건축 작품

    미스 반 데 로에의 대표적인 건축 작품으로는 바르셀로나 파빌리온(Barcelona Pavilion,1929), 투겐하트(Tugenhat,1930) 주택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되도록 새로운 이념과 기술을 가지고 건축에 표현하는데 노력하였으며, 실제로 이러한 모습들이 그의 작품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경우 세계건축 박람회 당시 독일 전시관의 역할이었는데, 십자형 크롬기둥을 사용함으로써 철강 구조에 대한 시초가 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에는 데스틸과 몬드리안의 개념들이 잘 투영하고 있습니다. 그 평면 구성은 몬드리안의 구성 요소와 흡사합니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은 몬드리안의 평면적 구성 요소를 3차원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건축물에 응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의 또 다른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판스워드 주택(Fansworth,1950), 레이크 쇼어 아파트(Lake shore,1951), 시카고의 콘벤션홀(Convention Hall,1953), 뉴욕의 시그램 건물(Seagram Building,1958)을 들 수 있습니다. 이후 미스는 그의 조국 독일로 돌아가서 서베를린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1962-1968)을 설계하였고 이듬해 그는 삶을 마감했습니다.

     

    미스 반 데 로에의 건축 철학

    근대 건축가 미스 반 데 로에(Mies van der Rohe)는 건축을 "적을수록 좋다. (Less is more.)"라고 설명한 것으로 잘 알려진 분입니다. 그는 그의 건축 작품들을 주로 사각형 박스로 표현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것이 어찌 훌륭한 건축물이 될 수 있는가?"라고 의아해할 만큼 사각 박스를 주 형태로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당시의 근대 모더니즘의 시대흐름을 따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장식 없이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사각형의 건축물들은 그동안의 건축 역사에서는 보기 어려운 건축 흐름이었습니다. 미스는 어떠한 사물(자연)을 이해하는 데는 명쾌함이 있어야 하고 그래야 사물의 방향이 올바로 보인다고 설파했습니다. 건축과 문명은 긴밀한 관계에 있으며 "건축은 문명을 받치기도 하고 추진하기도 하는 힘에 의해 창출되어야만 하고, 그 시대의 내부구조를 가장 능숙하게 표현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문명의 구조는 과거의 일부분이기도 하고 현재의 일부분이기도 하며, 혹은 미래의 일부분이다. 따라서 단순한 것은 아니고, 그 뜻을 명확히 하여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과거의 어떤 것도 이미 변할 수는 없고, 현재에 관해서는 그것을 인정하여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래는 창조성이 풍부한 사상과 행동에 의해 열린 상태인 것이다. 이러한 것이 건축이 탄생하는 구조이다", "건축이란 그 시대의 의지를 공간에 이입한 것이다. 따라서 생명을 가지고 변화하며 늘 새롭다."라며 건축을 정의해 왔습니다. 그의 표현 중 가장 유명한 한 문장은 "건축은 2개의 벽돌을 주의 깊게 쌓을 때 시작된다."입니다. 그에게 건축은 "축조의 예술(art of building)"이었습니다. 미스만큼 정교하게 계획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스는 건축학교에서 스스로 한 번도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그러한 그가 한 시대에 건축의 한 획을 그을 수 있을 만큼 건축 정신과 이념이 풍부했고, 그걸 넘어 학생들에게 자신의 조형, 건축에 대한 이해를 명확히 시킴으로써 보다 나은 건축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분입니다. Carter는 "미스 반 데 로에(Mies van der Rohe)는 시인의 창조적이고 해석적인 이해력으로 작품을 만든 합리주의자"라고 말했을 만큼 미스는 (디자인 접근방법에서 다소 보수적이긴 하지만) 모든 자연물을 이해하고 표현하는데 명확한 조형적 개념을 가지고 건축에 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글을 통해서 "미스 반 데 로에(Mies van der Rohe)"라는 인물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건축학도라면 앞으로 미스의 건축 철학을 잘 익혀서 건축에 임해야 하는 자세 및 조형의 이해, 추구해야 할 건축 방향을 스스로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건축학도가 아니더라도, 이 글을 통해서 한 시대를 열정적으로 살아가며 건축에 대해 탐구했던 한 근대건축가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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